• 최종편집 2024-04-08(월)
 



최근 김승휘 법무법인 이우스 대표변호사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해 나눔 문화 확산에 동참했다.
광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김 변호사는 최근 1억 원을 약정해 광주 12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에 가입했다. 김승휘 변호사는 “마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가족들의 응원으로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뒀던 나눔을 실천하게 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고 가입 소감을 밝혔다. _박미희 기자

김승휘 변호사는 덕망 있는 법조인이다. 그의 고향은 전남 해남 산이 진산리, 2남 4녀 중에 넷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명석한 두뇌로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는 산이 초·중학교와 광주살레시오고, 서울대학교 공법학과(88학번)을 졸업한 뒤 사법시험(40회)에 합격해 사법연수원(30기)를 수료했다. 2001년 판사로 임용된 후 광주지법 해남지원, 광주고법 판사, 창원지법 거창지원장, 광주지법 부장판사를 역임한 뒤 올해 2월 퇴임했다. 

20여 년 간의 법관 생활을 마무리하고 최근 법무법인 이우스 대표변호사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그는 ‘광주 122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해 평소 품고 있던 사회공헌의 뜻을 실천했다. “평소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을 인생에 있어 꼭 한번 해야 하는 일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면서 평소 품었던 사회공헌의 뜻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회원 가입을 하게 됐습니다. 돈이라는 것이 내 손에 쥐어져있으면 다시 내보내는 것이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지 보름 밖에 되지 않았지만 먼저 회원 가입을 하고 앞으로 사회공헌의 뜻을 실천할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곁에서 제 뜻을 지지해주고 응원해준 아내(강윤희 씨)와 가족들이 있어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웃음).”

명법관으로 이름이 높았던 그가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 질문에 김승휘 변호사는 좋은 판결을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 했던 삶과 법관으로서 인간적인 고뇌에 대해 말했다. “2001년 2월 19일에 임용돼서 2021년 2월 18일에 퇴임식을 가졌으니 신기하게도 딱 20년간 법관생활을 했네요. 어려서부터 장래희망이 훌륭한 법관이 되는 것이니, 주어진 길에서 최선을 다 했어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이지만 사실상 법관의 삶을 들여다보면 남다른 무게가 있어요.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한 존재인데 그런 불안전한 존재로 한 사람의 삶을 좌우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야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이 주어진 자리에서 좋은 판결을 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 했습니다. 20여 년간 최선을 다 했기에 이젠 그 무게를 내려놓고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었어요(웃음).”

수없이 많은 밤을 지새우며 현명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던 나날들.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판결에 대해 묻자, 김승휘 변호사는 온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2002년 형사합의재판부 사건으로 맡았던 강도사건이 기억에 남아요. 3인 합의로 피고인의 유무죄를 판단하는 소송방식으로 저는 배석판사로 참여했습니다. 평의를 이뤄내고 판결을 선고하는 당일 아침에 편지 한 장을 받게 됐어요. 초등학교 4학년인 피고인의 딸은 편지를 통해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없는 삶에 대한 두려움과 부디 아버지를 용서해달라는 절절한 심경을 토로했어요. 그 편지를 읽으니 저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재판장님을 비롯한 배석판사님과 합의를 통해 감경 판결을 내렸습니다. 제가 법관생활을 하면서 대단한 명판결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이 판결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법에도 눈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지요.”

온화한 인품과 높은 덕망으로 신망을 얻었던 김승휘 변호사. 그에게 법관 생활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이냐고 묻자, 하나의 일화를 전해준다. 이를 통해서 그의 삶을 태도를 읽을 수 있었다. “판사로 임용된 후 고향인 광주지법 해남지원에서 2년간 근무한 적이 있었어요. 근무지에서 차를 타고 1~20분 거리에 부모님이 사시는 고향집이 있었어요. 근무 중에 짬이 나면 점심 먹으러 불쑥 찾아가곤 했었는데, 그러면 부모님이 아주 반겨하셨지요(웃음). 돌이켜보면 법관 생활 중에 가장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은 제가 법관의 길을 가는 데 가장 큰 힘을 주신 분이세요.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서울의 유명 로펌에 면접을 보고 왔다고 말하니, 다른 사람이라면 좋아할 일을 되레 어머니는 울면서 ‘우리 집안이 가난해서 네 꿈을 접으려하느냐, 너는 장차 훌륭한 법관이 될 사람이다’며 ‘가족 걱정은 하지 말고 네 꿈을 펼치라’며 간곡하게 만류하셨지요. 그렇게 법관생활을 시작해 퇴직한 지금도 20년 전 울먹이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슴에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법조인인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시고 오늘이 있기까지 가장 큰 힘이 되어주신 부모님. 그 마음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늘 최선을 다해 살아야한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법관시절,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나오는 청송(聽訟)의 한 구절인 재어신독(在於愼獨)을 좌우명으로 삼아왔다. 흔히 짧게 줄여 청송(聽訟)이라고 하지만 원문은 ‘청송지본 재어성의 성의지본 재어신독(聽訟之本, 在於誠意, 誠意之本, 在於愼獨)’이다. 즉 ‘송사(재판)를 처리하는 기본은 성의(정성)을 다하는 것에 있고 이에 대한 근본은 혼자 있을 때 몸가짐을 바로 하고 말과 행동도 삼가야 한다’는 의미로 재판에 있어 정성을 다해 듣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변호사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며 그는 그 정신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일관되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법관시절, ‘청송(聽訟)’이라는 목민심서의 구절을 좌우명으로 삼아왔지요. 하지만 변호사 생활을 시작해보니 남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것이 비단 송사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만사 모든 일을 풀어가는 시작임을 알겠더군요(웃음). 앞으로 의뢰인들의 일을 내 일처럼 여기는 사람, 어려움에 처한 의뢰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채 잉크가 마르지 않는 깨끗한 새 명함에는 그의 휴대폰 번호가 뚜렷하게 적혀있다. 의뢰인이 어려울 때면 언제든 가장 먼저 전화를 걸어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그의 생각이 담겨있는 것. “처음엔 휴대폰 번호가 없는 명함과 휴대폰 번호가 적힌 명함 두 가지를 받았어요. ‘왜 그렇냐’고 물어보니 직원이 ‘변호사 생활을 하다보면 언제 어떻게 명함을 가려 써야하는지 알 것’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저는 휴대폰 번호가 적힌 명함만 쓰겠다고 했어요. 저도 언젠가 밤낮없이 걸려오는 의뢰인들의 전화를 받다보면 지칠 수도 있겠죠(웃음).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부터 휴대폰 번호가 없는 명함을 갖는 것은 그렇지 않는 것과 그 자세부터 큰 차이가 난다고 생각해요.”

한평생, 법조인으로서 한국사회의 치열한 갈등과 반목을 바라봐온 김승휘 변호사. 그는 끝으로 이번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이 양극화로 인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부문화 확산에 기여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은 짧은 시간동안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뤄냈어요. 경제 선진국이라는 성과를 얻었지만 반면 양극화와 빈부격차라는 부작용도 얻었지요. 앞서 자본주의를 도입한 서구사회는 사회 전반에 확산된 기부문화 덕분에 이런 부작용을 완화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한국사회도 양극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사회 전반에 기부문화가 확산되어야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이번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이 기부문화 확산에 기여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개인적으로 아너소사이어티라는 이름이 영광스럽고요. 가입식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고 나서는 책임감이 느껴집니다. 대중들에게 ‘아너소사이어티’로 사회적 책임을 다 하겠다고 공표한 만큼, 앞으로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나가겠습니다!” [1115]

주간인물(weeklypeople)- 박미희 기자 -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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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聽訟)의 정신을 실천해온 명법관! 아너소사이어티 회원 가입으로 인생 2막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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