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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 주도한 김정호 변호사… “국민통합 위해 5·18 역사 왜곡 막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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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018-03-16 조회8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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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4일, 법원은 전두환 회고록 1권 ‘혼돈의 시대’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인용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5·18이 북한군이 개입한 반란이자 폭동이라는 주장을 비롯해 헬기사격이 없었다는 주장,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주장 등 회고록에 실린 내용 33가지가 역사적 사실을 왜곡했다고 판단해 총 3권 중 1권에 대한 출판 및 배포를 금지했다.

 

그러나 전두환 전 대통령은 33가지 부분을 검은색 잉크로 덧씌운 뒤 책을 재출간했다. 이에 5·18 단체는 ‘희생자들에 대한 암매장 부정’ ‘광주교도소에 대한 시민군 습격’ ‘무기고 탈취시간 조작’ 등 40가지 내용에 대해 두 번째 출판·배포 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1월31일 최종심문 기일이 마무리됐고, 2월 중 법원 결정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아직도 법원 판단이 나오지 않고 있다. 전 전 대통령이 법원에 여러 차례 서면 자료를 추가 제출했기 때문이다. 전 전 대통령은 “5·18 당시 시신을 암매장한 것이 아니라 가매장한 것”이며, “광주교도소를 시민들이 습격한 것은 사실”이라며 관련 자료를 법원에 제출했다.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첫 번째 가처분 신청의 법률대리를 맡아 이 책의 출판 및 배포 금지 결정을 이끌어낸 김정호 변호사는 회고록과 관련한 두 번째 소송도 주도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광주전남지부장인 김 변호사는 “허위사실과 역사왜곡이 가득한 전두환 회고록이 누더기가 돼 폐기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대응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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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전두환 회고록에 대한 법원의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인용 결정이 나왔다. 그러나 전 전 대통령은 문제가 된 부분만 덧칠해 회고록을 재출간했다.

 

“전두환은 1차 출판 및 배포금지 가처분 결정에서 법원이 문제 삼은 곳만 편법적인 방식으로 덧칠해 재발간했다. 법원의 결정에 반성하거나 자숙하지 않은 채, 편법적이고 탈법적인 방식으로 회고록을 재출간한 것은 후안무치한 역사왜곡이다. 회고록 재출간은 오히려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더 절감하는 계기가 됐다. 5·18 역사왜곡이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여전히 슬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재진행형이며, 반드시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것을 보여줬다.”

 

 

2차 소송에서 지적한 회고록 속 허위 사실은 무엇인가.

 

“전두환은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자위권행사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왜곡 논리를 만들기 위해 계엄군이 조작한 무기피탈시간을 그대로 인용했다. 암매장을 부인하는 내용, 광주교도소 습격사실을 조작해 인용한 내용, 계엄군 철수 후 광주시내에서 무장시위대 강도 사건이 빈번했다는 내용도 허위 사실이다. 또 시위군이 파출소를 습격하거나 고 안병하 경무관을 비롯한 경찰들이 도주해 계엄군이 불가피하게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는 내용 등도 허위다.

 

2차 소송에서 전두환 회고록의 허위사실을 적시한 내용은 1차 소송보다 훨씬 방대하지만, 이 40가지 목록도 일부에 불과하다. 신속하게 출판·배포 금지 인용 결정을 받기 위해 우선 객관적 사실 확인이 가능한 허위사실을 특정해 가처분 신청을 한 것이다. 역사왜곡이 가득한 전두환 회고록이 누더기로 폐기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법률 대응을 할 생각이다.”

 

 

2차 소송의 최종 심문 기일이 마무리됐지만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1월31일 심문이 종결됐지만, 이후에도 참고서면과 추가 소명자료 제출을 통한 공방이 있었다. 추가 자료에 대한 검토가 길어져 법원의 결정이 일반적인 경우보다 더 늦어지고 있다.”

 

 

전 전 대통령 측은 ‘5·18 당시 시신을 암매장한 것이 아니라 가매장했으며 모두 수습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두환이 본인의 회고록에 ‘암매장은 유언비어이며, 사실로 밝혀진 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역사를 조작하는 허위사실을 기재한 것이다. 실제로 암매장은 이뤄졌다.”

 

 

암매장 사실을 밝힐 수 있는 증거는 어떤 것인가.

 

“5·18 당시 광주시청 직원이었던 조성갑씨는 41구의 시신을 수습했다. 그 목록을 법원에 증거로 제출했다. 주남마을 야산의 시신 2구는 1980년 6월2일 발견됐는데, 22년 만인 2002년 유전자 검사를 통해 11공수여단이 1980년 5월23일 산속으로 끌고 가 총으로 즉결 처형한 후 암매장한 양민석(20·노동자)과 채수길(21·식당종업원)로 확인됐다. 5·18 당시 3공수여단 하사였던 정규형씨는 1993년, 1997년, 2001년 언론을 통해 본인이 광주교도소 근처에서 암매장을 한 사실을 고백했다. 정씨는 당시 “밤마다 꿈속에 광주 시민 3명이 나타나 잠을 설친다”며 정신병원을 오가며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또 당시 전남대 학생과장이었던 서명원씨가 1980년 5월22일 전남대를 수색하는 과정에서 암매장된 고등학생 시신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담은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단행본도 증거로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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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전 대통령은 시민들이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다면서, 5·18이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폭동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1997년 대법원 판결에서도 인정된 부분이라고 주장하는데.

 

“당시 시위대가 광주교도소를 6회에 걸쳐 공격했다는 전두환의 주장은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위조·변조된 군 자료에 근거한 허위사실이다. 특전사 전투상보 등 군 자료가 위조·변조돼, 1996~97년 당시 5·18 수사와 재판에서는 시민들이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다는 주장이 허위라는 점을 규명하지 못했다.”

 

 

시민들이 광주교도소를 습격했다는 자료가 허위라는 증거는 무엇인가.

 

전남경찰청은 ‘5·18민주화운동 과정 전남경찰 역할’ 보고서에서 “시민군 공격의 무모함과 비현실성뿐만 아니라 교도소 공격이 없었다는 당시 교도소장 등 관계자의 증언, 담양경찰서의 피해가 경미한 점 등을 종합해 보면 시민군의 광주교도소 지속 공격은 오인, 과장되었거나 왜곡된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또 2018년 2월 발표된 국방부 특별조사위원회 조사결과 보고서를 통해 군 자료의 위조·변조와 조직적 은폐가 사실로 확인됐다.

 

육군본부가 특전사 등의 전투상보를 기초로 최종적으로 발표한 광주교도소 습격 문건은, 5·18을 불순분자의 소행으로 몰고 가기 위해 조작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 사건은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광주교도소를 탈취할 계획을 세운 시민들의 공격으로 촉발된 교전이 아니라, 광주교도소 인근 국도와 고속도로를 오가는 시위대와 광주 외곽을 봉쇄하려던 계엄군 간의 산발적 충돌이었다.”

 

 

회고록 출간으로 얻는 인세 수익은 국고로 환수되고 있는가. 출판 금지가 될 경우 추징은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나.

 

“회고록 인세 수입에 대해 법무부에서 추징 절차를 밟고 있다. 국가 차원에서 범죄수익을 추징하기 위해 법무부는 최근 대검찰청에 범죄수익환수과를 신설하고, 서울중앙지검에 범죄수익환수부를 신설했다. 회고록 전체 3권 중 5·18에 대한 허위사실이 집중된 것은 1권이다. 1권이 출판금지될 경우 추가적인 추징은 이뤄지기 힘들겠지만 2·3권에 대해서는 추징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전 전 대통령은 5·18 명예훼손 관련한 검찰 소환에 두 차례나 응하지 않았고, 회고록 내용이 사실이라는 주장을 바꾸지 않았다. 학살 행위를 국제범죄로 검찰에 고발하면 다시 기소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민변 광주전남지부가 중심이 돼, 공소시효가 완성된 민간인 학살행위와 헌정질서 파괴에 대한 처벌 문제를 검토하고 있다. 민간인 학살행위에 대해 국제법정까지 안가더라도, 공소시효를 배제한 신법의 적용이 가능한지를 따져 대한민국 법정에 다시 세울 수 있는지 검토 중이다. 전두환에 한정되는 논의가 아니라, 5·18당시 현장지휘관이나 직접 학살행위에 적극 가담한 군인들의 처벌문제까지 포함한 논의다. 주남마을에서의 학살행위는 대표적인 민간인 학살과 암매장 행위다.​”

 

 

최근 5·18진상규명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실체적 진실을 찾기 위한 길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번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는 법적 근거 없이, 대통령의 특별지시와 국방부 장관의 훈령에 근거해 설립됐다는 태생적 한계가 있었다. 조사권한도 강제력이 없어 한계가 많았다. 5·18특별법을 통해 법에 근거한 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설치할 수 있고, 미흡하지만 일정 정도 강제조사가 가능한 권한이 부여돼 국가 차원의 공인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이 마련됐다. 그 자체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암매장 발굴 작업도 미완의 진실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의 암매장 발굴조사는 5·18재단을 중심으로 민간 차원에서 이뤄져왔다. 5·18특별법 통과로, 암매장 발굴을 포함한 진상조사가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게 됐다.”

 

 

5·18 단체 등에서 ‘껍데기 특별법’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진상조사위 활동에 제약은 없을 것이라고 보나.

 

“특별법의 핵심은 강제조사가 가능한 조사권한이 부여돼야 한다는 것이다. 의문사위와 진실화해위의 세월호 조사위 활동 사례를 보면 물적 증거를 확보하거나 증인 출석을 확보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런 부분을 강제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우려된다. 동행명령을 거부할 경우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지만, 법사위에서 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형사처벌 조항을 정하거나, 과태료 금액을 상향해야 한다. 현행 과태료 1000만원 규정은 미흡하다. 물적 증거를 확보할 압수수색 요청 권한 요건도 지나치게 엄격하다. 자료 확보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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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기간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진상조사위에 더 반영돼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보나.

 

“진상조사위 활동기간은 2년+1년이다. 부족하더라도 일단 정해진 기간 동안 진상규명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성과 소명의식을 갖춘 분들이 위원으로 참여해야 한다. 정치권이 밀실에서 특정인을 추천하는 방식이 아닌, 위원추천위원회 같은 투명한 절차를 통해야 한다.

 

작년 연말 국회 국방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삭제된 ‘실무위원회’도 보완돼야 한다. 제주 4·3사건의 경우 진상조사위 위임에 따라 제주도에 구성된 ‘실무위원회’가 상당한 역할을 했다. 진상조사위원이 당초 15명에서 9명으로 대폭 줄어든 만큼 실무위원회를 통한 뒷받침은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진상규명이 어떻게 진행돼야 하며,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5·18 이후 37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발포 명령자를 아직까지도 특정하지 못하고 있고, 암매장의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5·18이 북한 특수군 600명이 남파돼 일으킨 반란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진상규명이 되지 않아 가해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피해자는 누구를 용서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국민통합을 주장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국가 차원의 공식적 발표가 없다면 결과는 인정받기 어렵다. 왜곡과 폄훼를 막아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종식시키고 국민통합을 하려면 국가 차원의 진상보고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2018.03.13(화) 15:00:00  조유빈 기자 ㅣ you@sisajourn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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